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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원코리아] "기억해 주세요" 한국 찾은 사할린 1세 김윤덕 씨 / YTN

2017-11-15 0 Dailymotion

[앵커]
일제 강점기 강제 노역을 당한 사할린 동포 중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많습니다.

이제 아흔이 넘은 사할린 1세대 동포들, 노환을 치료하기 위해 어렵게 고국을 찾았습니다.

고국을 찾은 사할린 동포의 목소리를 김수영 PD가 전해드립니다.

[기자]

[전숙하 / 진료부장 : 검사 며칠 받느라 힘드셨죠?]

[김윤덕 (94) / 사할린 징용 한인 1세 : 아이고, 일 없습니다. 좋습니다.]

사할린 잔류 1세대 동포들을 위한 초청진료 사업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진행됐습니다.

지난 6월, 사할린 1세대 동포 스물다섯 명이 한국을 찾았습니다.

한 달간 정밀검사와 진료를 받은 뒤 가족이 있는 사할린으로 돌아갔습니다.

[박춘자 (87) / 사할린 동포 1세 : 늙으니까 아파서, 여기서 치료받으면 좋은가 싶어 왔습니다. 몸이 아픈 거 다 알려주지요. 얼마나 감사합니까.]

지난 1938년 일제의 국가총동원법으로 사할린 강제 노역에 동원된 조선인은 3만여 명.

징용 1세대 김윤덕 씨는 1943년,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사할린으로 끌려갔습니다.

갈비뼈가 부러지고 손이 끊어지는 강제 노역의 고통은 70년이 지나도 생생합니다.

[김윤덕 (94) / 사할린 징용 한인 1세 : 손이 떨어졌는데, 온통 피가 났는데, 제가 사할린 와서 고생한 얘기 하면, 눈에 피 나와요.]

1990년 한국과 구 소련의 수교 이후, 정부는 사할린 동포 영주 귀국의 길을 열어줬습니다.

하지만 광복 이전에 태어난 1세만 귀국 대상자로 한정한 까닭에, 사할린에 남아있는 가족들과 생이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.

그 때문에 박춘자 할머니를 비롯한 사할린 1세는 영주 귀국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.

[박춘자 (87) / 사할린 동포 1세 : 난 안 했어요. 자식들 놔두고 어떻게 오겠습니까? 함께 살아야지. 마음이 편한 사람은 왔었지만, 나는 어린 아들이라 두고 잘 살지 못하니까 함께 살아야지요.]

차디찬 사할린에서 평생 망향가를 부르던 동포들의 남은 소망은 고국이 자신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.

[김윤덕 (94) / 사할린 징용 한인 1세 : 제 고향은 경상북도 경산군 하양면 남하동 1구입니다. 제 이름은 김윤덕이. 기억을 하시고. 우리 이래 왔으니, 말해드리지요. 우리 걱정 많이 해주셔서 치료도 잘 받고 사할린에 잘 가게 됩니다. 그래서 고맙습니다.]

YTN 월드 김수영입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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